예술의 향기/미술전시

서양미술거장전-렘브란트

마티스 Misul 2008. 11. 7. 21:39

17∼18세기 서양미술거장전-렘브란트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서양미술거장전'은 렘브란트를 비롯해 17∼18세기 서유럽 거장들의 작품 76점이 전시된다. '렘브란트를 만나다'라는 부제에 걸맞지 않게 그의 회화작품은 고작 1점뿐이다. 대신 그의 판화(에칭) 26점이 걸린다. 또 루벤스, 브뤼헐, 반다이크, 과르디, 파니니, 부셰, 푸생 등 당대 최고 화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작품은 모두 러시아 국립푸시킨미술관에서 가져온 것으로 아시아 순회전이 아니라 한국전만을 위해 기획된 것이다

 

 

 바로크회화 명작 풍요와 절제의 묘한 대비

» 네덜란드 화파인 소 다비트 테르니스의 <케르미스(축제풍경)>. 당시의 시골축제를 풍경화 반 풍속화 반으로 묘사했다. 가운데 흥겨운 축제인파가 있고 좌우에 ‘쉬’하는 사람과 벽잡고 하소연하는 사람이 재미있다.
플랑드르 화파·네덜란드 화파 비교 ‘재미’ - 정작 렘브란트 작품은 초상유화 1점 달랑

 

하멜이 조선의 제주도 해안에 표류했던 17세기, 그의 조국 네덜란드는 영국과 쌍벽을 이룬 해상무역 제국이었다. 서인도 회사를 세워 세계의 부를 실어날랐고 수도 암스테르담은 당시 세계 금융, 무역의 중심지였다.

 

앞서 신교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스페인과 전쟁을 치르고 출범한 네덜란드 공화국은 프로테스탄트가 중심이 된 신흥 부르주아의 나라였다. 당시 이 나라 화가들의 고객 또한 그들이었다. 고객들은 가톨릭교회처럼 부유하지 않아 화가들은 스스로를 시장에 내놓아야 했고, 경쟁에서 이기려면 자기만의 그림이 있어야 했다. 종교화, 역사화, 풍경화, 인물화 등 다양한 장르의 그림이 백화제방처럼 꽃필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그 정점에 렘브란트(1606~1669)가 있다. 전성기 때 그는 직공 100명을 거느린 그림공장장이었다.

 

7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막하는 ‘서양미술거장전-렘브란트를 만나다’에 전시되는 작품들은 65만5천여점의 소장품을 자랑하는 러시아 모스크바의 푸시킨박물관에서 온 진객들. 17세기 네덜란드의 바로크 회화가 핵심이다. 빛과 그림자 대비를 극대화하면서 형태와 색을 도드라지게 하는 화풍. 이탈리아 거장 카라바조가 구사한 ‘키아스쿠로(명암법)’에 뿌리를 둔 이 화풍은 스페인, 프랑스를 거쳐 네덜란드에서 절정을 이룬다.

 

» 플랑드르 화파인 얀 다비츠존 더 헤임의 <바닷가재가 있는 정물>. 식당 장식용 그림으로 풍요로움을 찬양하는 내용. 오브제 사이의 비례가 맞지 않고 바닷가재를 부각시킴으로써 작가의 그림 실력을 뽑냈다.
이 가운데 플랑드르(프랑스 북동부와 네덜란드 남부)와 네덜란드 화파가 보여주는 미묘한 차이가 주목된다. 종교전쟁 뒤 플랑드르는 구교인 스페인 왕 치하에 남고 중북부 네덜란드는 독립해 신교의 중심지가 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화가의 고객도 대체로 왕과 성직자(플랑드르), 시민계급(네덜란드)로 갈렸다.

 

화려한 색과 웅장함을 강조한 이탈리아 작가 조반니 파올로 파니니(1691~1765)의 <로마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성당의 내부>와 갈색톤으로 가라앉은 엠마뉘얼 더 비터(1617~1692)의 <암스테르담 구교의 내부>는 그림 속 건축물 자체가 화려함과 검소함으로 대비된다.

 

플랑드르 화파인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의 <성 도미니크에게 묵주를 주는 마리아>와 네덜란드 화파 헤르브란트 판 덴 에이크하우트(1621~1674)의 <동방박사의 경배>를 비교해도 재미있다. 루벤스의 화려한 그림에는 성 도미니크, 토마스 아퀴나스, 성녀 카타리나 등이 등장한다. 에이크하우트의 그림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화면을 배경으로 이국풍의 동방박사와 흑인, 중국인 동자가 등장한다. 특히 후자의 그림은 당시 네덜란드 무역상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노예를 실어오면서 화가한테 외래인이 낯설지 않게 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 프랑수아 부셰의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노골적인 성애장면이지만 두 천사를 집어넣어 보는이를 덜 민망하도록 배려했다.(위) 렘브란트의 <나이 든 여인의 초상>. 빛과 어둠의 극명한 대조를 통해 인물의 외면뿐 아니라 내면까지 잡아냈다.
또 주목되는 것은 생생한 정물화인데, 플랑드르 화파는 ‘풍요’를(얀 피트 <죽은 사냥감>, 프란스 스니더르스 <푸줏간>), 네덜란드 화파는 ‘절제’를(빌럼 판 알스트 <장미와 복숭아>, 얀 위스튀스존 판 하위쉼 <꽃과 과일>) 보여준다는 점이다. 특히 후자는 시든 꽃, 벌레먹은 과일 등을 통해 현세의 덧없음을 표현한다. 프로테스탄트가 끊임없이 스스로 일깨웠던 것.

 

하지만 주최 쪽이 상표로 내세운 렘브란트 작품은 달랑 초상 유화 한점. 그나마 에칭 15점이 덧붙어 체면치레는 한다. 오히려 다른 명작 몇 작품을 놓치면 손해다. 클로드 로랭(1600~1682)의 <다리 위의 전투>. 양떼가 노니는 로마시대의 평화로운 해변 풍경인데 가까이 가서 보면 훗날 황제가 되는 콘스탄티누스가 권력을 놓고 막센티우스와 겨루는 전투를 그린 그림이다.

 

프랑스 작가 니콜라 푸생(1594~1665)의 <사티로스와 요정>과 프랑수아 부셰(1703~1770)의 <헤라클레스와 옴팔레>도 주목된다. 각각 고전주의, 로코코 회화에 해당하지만 벌거벗은 남녀의 농익은 춘정을 그린 점에서 일치한다. 한두 명의 아기천사를 두어 춘화임을 눙친 이들 작품은 프랑스 귀족의 은밀한 침실에 걸렸을 법하다. / 한겨레신문,2008.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