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향기/미술소식

포스트모더니즘·페미니즘의 전위, 386 여성작가

마티스 Misul 2008. 4. 8. 15:01

 포스트모더니즘·페미니즘의 전위, 386여성작가

언더그라운드 · 유학파 · 이머징 아티스트

 

 

이불 〈플렉서스〉 혼합재료 95×80×36cm 1998
이불은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고, 국내 화단에서 명성을 얻은 입지전 성격의 스타작가다.


 

60년대 출생, 80년대 학창시절, 90년대 왕성한 창작활동을 벌이는 이른바 386세대 여성작가는 사회문화적 변화를 도출한다.

386 여성작가는 언더그라운드·유학파·이머징 아티스트로 분류되며, 이들은 국내 화단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며, 시대적 요구로 자리매김한다.

필자는 젠더구조를 문제삼은 페미니즘 운동을 중심으로 386 여성작가의 부상 배경을 진단하고, 현대미술에서 그들의 미술사적 위치와 포스트모더니즘·페미니즘과의 역학관계를 살펴본다.

최근 30대 여성작가들의 두드러진 활동이 한국 화단에서 새로운 현상으로 주목되고 있다. 1960∼70년 사이에 출생하여 19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고 1990년대 초중반부터 초기작품을 배출하기 시작하여 지금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보이는 이들에 의해 여성미술은 물론 미술계의 지형이 변화되는 느낌이다. 선배 여성작가들이 겪은 생리학적·사회학적 불이익을 극복하고 30대에 유망주로, 때로는 국제적인 작가로 부상하는 배경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페미니즘이 화단 안팎에 끼친 영향, 즉 다원주의, 타자인식, 젠더 구조의 변화 등 일련의 발상의 전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해체주의가 언어와 기표의 자유 유희로 방향감각을 상실, 실천적으로는 무기력한 메타 담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는 다르게 우리는 지금 그것이 끼친 사회문화적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30대 여성작가군의 현상은 1990년대 한국에 정착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산물 또는 그 효과라는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1980년대의 반모더니즘 단계·1990년대의 탈모더니즘 단계로 대별하여 파악할 때 이들은 시기적·정서적으로 탈모더니즘 세대에 속한다. 1980년대의 작가들이 1970년대를 지배한 모노크롬 회화, 크게는 모더니즘 미술을 전면 부정하면서 민중리얼리즘·극사실주의·신표현주의 등 새로운 형상화와 함께 행위·설치 등 참여와 소통의 예술을 대두시켰다면, 1990년대 작가들은 탈이데올로기·다원주의 기치 아래에서 절대 자유주의 정신으로 매체·장르·양식에 구애받지 않고 ‘확장된 장’으로 작업, 본격 포스트모더니즘을 정착시켰다.

모더니즘이 기본적으로 부계적 담론, 남성적 양식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에 이러한 반/탈모더니즘 운동과 페미니즘의 불가분한 관계를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페미니즘 미술 운동의 가장 위대한 공헌은 그것이 모더니즘에 대해 아무것도 공헌한 바가 없다는 것”이라는 루시 리퍼드(“Sweeping Ex- changes: The Contribution of Feminism to the Art of the 70’s,” Art Journal, Fall/Winter 1980)의 단언이나, “페미니즘은 모더니즘의 실천과 제도 그리고 비평구조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어야 한다”는 그리셀다 폴록(“Feminism and Modernism,” Framing Feminism: Art and the Women’s Movement 1970∼1985 Pandora, 1987, pp. 80, 104∼5)의 토로가 뒷받침하듯이 페미니즘 미술은 기본적으로 여성과 여성미술이 타자로 인식되는 성차별 문화와 남성 중심의 화단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되며, 그것은 결국 대표적 남성 양식인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과 거부로 귀결된다.

물론 1990년대 여성미술을 페미니즘 시각으로만 판단할 수는 없으나 30대 여성작가들이 급성장한 배경에는 기존의 젠더 구조를 문제 삼은 페미니즘 미술운동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는 30대 여성작가들의 활동을 진단하고 평가하는 하나의 시도로서 현대미술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미술사적 위치와 그것과 포스트모더니즘·페미니즘과의 역학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 여성작가들의 페미니즘 의식은 비록 미온적인 형태로 움트기 시작했으나 포스트모더니즘과 마찬가지로 모던 추상화의 거부에서 비롯되었다. 원로 화가 천경자, 재미 서양화가 김원숙이나 김점선 등이 그 예증이듯이, 추상화 일색의 시대에 여성 작가들은 독자적인 양식으로 자전적 일화를 그리거나 여성 특유의 환상과 나르시즘을 형상화하였다. 1970년대 초에 결성된 ‘표현그룹’ 역시 페미니즘 맥락에서 조명할 수 있다. 이들은 여성에게 불리한 현실적 제약을 극복하기 위하여,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표현하기 위하여 표현그룹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모였으며, 유연희·김명희 등의 작업이 보여주듯이 여성의 사회적·심리적·신체적 경험을 주제화함으로써 여성양식의 한 전형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형상화가들이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라는 페미니스트 의식으로 여성성을 전략화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작가적 실존 인식에 젠더 인식을 병치시킨 점에 페미니즘과 결부될 수 있다.


 

박화영 〈빠지다 빠지다 빠지다〉 3채널 비디오 프로젝션 6채널 오디오 1998
새로운 소재와 매체의 발굴로 여성 특유의 감성과 지성을 표출한다.

모더니즘의 철저한 반란

형상화가들이 여성양식과 본질론적 접근으로 소극적 페미니즘을 수행했다면 민중미술 계열의 ‘여성미술연구회’(여미연) 동인들은 반모더니즘과 사회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적극적인 페미니즘을 실행하였다. 1985년 민중미술의 소집단을 하나의 전문화된 기구로 재편성한 ‘민족미술협의회’ 여성분과로 출발, 김인순·김진숙·윤석남 등을 주축으로 페미니즘 미술을 공론화했다. 이들은 생활과 유리된 자율적 예술, 제도화된 모더니즘 예술에 도전, 매년 〈여성과 현실전〉을 개최하고 계층간의 소통 및 연대의식을 고양하는 삶의 예술 강령을 실천하였다. ‘여미연’은 성차와 여성성을 불변의 범주로 파악하는 본질주의 미학에 맞서 여성미술에 대한 사회적·역사적 인식을 기초로 하는 유물론적 페미니즘을 표방함으로써 성별과 계급의 상호관계 및 그것의 역사적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는 본질주의의 맹점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관심사는 여성미학이나 여성양식보다는 계급구조와 사회적 불평등으로서 결국 여성성이라는 핵심이 빠진 유물론적 페미니즘의 이념적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모더니즘과 민중미술로 양분된 1980년대 화단의 갈등구조 속에서 본질주의 성향의 형상화가들과 사회주의 계열의 ‘여미연’ 작가들은 서로 대화와 소통이 차단되어 페미니즘을 하나의 결속된 힘으로 대두시키지 못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에 이르러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래와 함께 이 두 진영의 페미니즘이 교류 또는 부분적으로 합류하기 시작하였다. 즉 비모더니즘적 형상화와 반모더니즘적 민중 페미니즘 미술이 포스트모더니즘에 흡수되면서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이라는 새로운 기류를 형성한 것이다. 다원주의와 탈중심주의라는 포스트모더니즘 구호에 부응하듯이 1990년대의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은 이념·양식·장르적 제약을 초월하고 모더니즘·민중미술·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다양한 작업을 포함하면서 여성화단뿐만 아니라 미술계를 팽창시켰다.

이런 맥락에서 특히 민중계 작가들의 변신은 주목할 만하다. ‘여미연’의 초창기 동인인 윤석남은 1990년대에 들어와 민중계 공식 양식인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한계를 극복하는 독자적인 양식으로 페미니즘의 새로운 조형언어를 마련하였고, 조경숙·서숙진·류준화 등 2세대 민중작가들은 사회주의 내용에 해체주의 양식을 접목, 문명비판적 차원의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의 기틀을 다지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1993년 결성된 30대 여성작가 그룹인 ‘30캐럿’은 공동 연구와 지속적인 그룹전을 통하여 재래적 여성미술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하였으며, 부산의 ‘형상미술’그룹은 페미니즘과 형상미술의 접목을 통해 여성 양식의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홍지연 〈음양합일사례연구〉 철사 위에 테이프 508×353×224cm 1999
고유한 양식과 참신한 발상으로 신세대 이슈를 조형화한 작품이다.

언더그라운드·유학파·이머징 아티스트

탈모더니즘 시대인 1990년대에는 타자인식·젠더의식의 확산과 함께 페미니스트 이외에도 다수 여성작가들이 의식화하면서 여성미술의 질적 도약과 다변화가 이루어졌는데, 이 시기 30대 여성작가군의 출현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이건 아니건간에 이들은 이제 형식주의 모더니즘을 벗어나 문제의식을 갖고 내용지향적이고 문명비판적인 작업을 산출하게 된 것이다. 부계적 담론을 구축한 가부장제도의 전제를 의심하고, ‘섹스’보다는 ‘젠더’의 문화적 의미에 유념, 여성의 재현을 문제삼을 뿐 아니라, 신체에 대한 심리적·물질적 접근으로 성의 정치학을 몸의 정치학으로 대치시킨 이들에 의해 전세대 여성미술의 페미니즘 과업이 완성되는 듯하다.

또한 이런 비판적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편으로 전통 회화나 조각보다는 오브제· 설치· 퍼포먼스를 채택하고, 사진·영화·비디오·컴퓨터 등 대중매체와 영상매체를 활용함으로써 이들은 포스트모던아트를 주도하는 실질적 주체로 등장한 것이다.

20세기 말을 장식하고 21세기를 이끌어갈 30대 여성작가들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뉘어진다.

 첫째 1990년대 초부터 언더그라운드로 또는 독립적으로 꾸준히 활동해오다 지금은 제도권 작가로 활동하는 30대 중후반의 작가들이다. 이 가운데 이불과 김수자는 대형 국제전에 초대되고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은 후 그 성과가 국내에 피드백되어 화단에서 명성을 얻고 있는 입지전 성격의 스타 작가들이다.

둘째 그룹은 미국·프랑스·독일 등에 유학한 후 1990년대 중후반 귀국한 유학파를 비롯, 외국과 직·간접 교류를 통해 빠른 정보를 흡수하고 있는 진취적인 여성 작가군으로서 이들이 현재 여성화단을 질적, 양적으로 성장, 팽창시키는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 30대 중진 가운데 장영혜는 도발적인 설치나 비디오로 인간의 억압된 성욕을 주제화하고, 유현미· 이수경· 홍미선은 개념적 차원에서 젠더의 문제에 접근한다. 정서영·정주영· 이미경·김주현· 이소미·홍수자· 김나영 등은 새로운 페인팅이나 오브제 설치로, 함경아·김지현·신혜경·박화영·조계형 등은 사진, 비디오 작업을 통하여, 또한 황혜선, 하민수, 김유선, 안성희 등은 천·자개·스티커 등 새로운 소재와 매체의 발굴을 통하여 여성 특유의 감성과 지성을 표출한다.

셋째 그룹은 20대 말∼30대 초중반의 소위 ‘이머징 아티스트(Emerging Artists)’다. 첫째나 둘째 그룹이 언더그라운드 또는 재야에서 서서히 제도권으로 편입되고 있는 반면, 이들은 선배 작가들과는 다른 감수성으로 경력 초기부터 제도권과 스타를 지향한다. 작품뿐 아니라 작가 자신을 상품화·브랜드화하면서 탁월한 기획력과 추진력으로 돌진하는 이 30대 신진들은 40·50대는 물론 30대 후반 작가들에게도 일종의 위협으로 다가온다. 이윰·김세진· 박혜성·함양아·서혜영· 유현정 등은 비디오와 컴퓨터로 신세대 미디어 감성을 대변하며, 이진경·홍지연· 정혜승·이주요· 조헬렌·김희경· 정윤미·최소연· 장민정·박미라 등은 각기 고유한 양식과 참신한 발상으로 신세대 이슈를 조형화한다.



 

김지현 〈들쳐보기〉 혼합재료 1998 386 여성작가는 대중매체와 영상매체를 활용해서 포스트모던아트를 주도하는 실질적 주체로 등장한다.

이들 이외에 최근 국내에 소개된 해외 거주 작가 또는 교포작가들이 여성화단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그 가운데 니키리와 권소원은 모두 30대 초반의 뉴욕 거주 작가로서 2000년 광주비엔날레 본전시에 참여하고 있는 유망주들이다.

전술한 국내 작가들이 잘 알려진 것에 비해 이들은 아직 미지의 인물들이라 약간의 소개가 필요할 것으로 여겨진다. 패션사진작가로 출발한 니키리는 이제 모델을 찍기보다는 자신이 모델이 됨으로써 예술가로 등단하였다. 히스패닉· 펑크족· 야피족· 레즈비언 등 타자적, 주변적 커뮤니티에 들어가 그들에 동화된 모습으로 나란히 사진을 찍거나, 때로는 고독한 여행자, 뚱보 할머니, 오피스걸, 스트립걸이 되어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한다. 변신과 방랑적 여행의 다큐멘터리 스냅샷을 통해 그녀는 인종과 문화의 장벽을 초월한 복수 정체성, 또는 제3의 자아를 추적하는 것이다.

권소원은 블루프린트 드로잉에서 컴퓨터 애니메이션에 이르는 다양한 매체로 여성과 거주공간, 실내가구의 관계를 젠더 구조적 측면에서 분석한다. 의상과 마찬가지로 가구는 사용자의 취향·생활방식·지위를 나타내며, 그것의 선택은 사용가치 이상의 문화적 의미를 내포한다. 실내는 물리적 공간일 뿐 아니라 문화적 공간이며, ‘자기만의 방’을 꿈꾸는 여성에게는 심리적 공간이다.

 권소원은 이런 견지에서 공과 사, 안과 밖을 가르는 부계적 가정 이데올로기, 여성의 환상을 창출하고 투영하는 실내의 젠더적 의미, 여성성과 장식성 그리고 그것과 모더니즘의 역학관계를 통찰한다. 이들은 모두 사진·비디오 등을 사용하는 미래지향적인 미디어 작가로서, 또한 오리엔탈리즘과 무관한 아시아적 감수성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제시하는 기량 있는 작가로서 국제적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국내외의 30대 여성작가들, 그들의 창조 에너지가 한국 화단을 풍요롭게 하고 국제화의 고삐를 당기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파장 역시 만만치 않다. 작가 나이 35세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대가가 되거나 그렇지 못하면 퇴물로 취급하는 ‘조로증’, 예술적 참신성보다는 젊은 나이, 어린 나이를 선호하는 ‘연령차별주의’가 40대 이후 작가들을 주눅들게 하는 한편, 20대 청년작가 또는 작가 지망생들의 헛된 야망을 부추긴다.

그러나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30대 여성작가들의 부상은 부정할 수 없는 화단의 현실이자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그 미술사적 당위성을 인정받고 있다.

 

김홍희 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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