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향기/미술소식

고흐… 그를 만난 감동은 복제할 수 없다

마티스 Misul 2008. 3. 2. 10:47
고흐… 그를 만난 감동은 복제할 수 없다


  •  반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 암스테르담에서 파리까지
  • ▲ 고흐의 무덤에서 오베르 성당으로 가는 길
  •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뿌리 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깊이 고뇌하고 있다고,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런 경지에 이르고 싶다.'

    (-1882년 7월 빈센트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

     

    참 숱하게 봐온 그림이다. 유명하다 못해 달력, 엽서, 때론 벽시계와 캔버스 천 가방에까지, 지천으로 널린 게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1853~1890년)의 그림 아니던가.

    감흥이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지난 1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에 선 순간, 편견은 곧 오만임을 알았다. 고흐의 그림은 꿈틀거렸다. 해바라기도, 별도, 바람에 흔들리는 밀밭처럼 파도로 일렁였다. 가슴이 뛰었다. 숨이 막혔다.

    비바람이 불고 우박이 떨어지는 2월 초의 유럽. 그 속에서 고흐의 그림은 유일무이하게 뜨겁게 벅차고 또 달콤했던 기억이다. 사진이나 복제화가 건네지 못하는 감동, 더께처럼 내려앉은 물감의 소용돌이가 기다리는 네덜란드와 프랑스로 떠나봤다.

     

    첫째 날_ 네덜란드 아른헴(Arnhem, Netherlands)

  • 2월 초, 네덜란드는 아직 한겨울이었다. 스키폴(Schipol) 공항을 나오자마자 우박과 비바람을 맞았다. 바람이 세기로 유명한 네덜란드, 첫날부터 비바람에 호되게 맞은 기분이다.

  • 고흐의 그림을 제대로 보려면 아른헴 인근의 '크뢸러뮐러 미술관'(Kr?ller-M?ller Museum·www.kmm.nl)으로 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중앙역(Amsterdam Centraal)에서 아른헴으로 가는 기차(16유로, 1유로=약 1430원)를 탔다. H.크뢸러뮐러 부인의 소장품을 모아 네덜란드 정부가 1938년에 설립했다는 곳이다. 1시간쯤 달려 도착한 후, 역 앞 버스 터미널에서 오테를로(Otterlo)로 가는 105번 버스를 탄다.

  • ▲ 사진 왼쪽부터 오베르 성당과 고흐의 그림 / '반 고흐 미술관' 앞 광장 / 암스테르담 광장에 놓인 모형 나막신 / '크륄러뮐러 미술관'의 반 고흐 전시관 / 빈텐트와 테오의 무덤
  • 입장료는 7유로, 미술관 앞 조각공원을 둘러보려면 7유로를 더 내야 한다. 총 14유로를 내고 들어갔다. 통 유리로 지은 미술관, 르누아르, 피카소, 세잔, 쇠라…, 무수한 화가들의 방 중에서도 고흐의 방은 가장 규모가 크고 넓었다. 네덜란드 헤이그와 누에넨에서 그렸던 초기작보단 프랑스 파리와 아를에서 그렸던 후기작이 더 많다.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할머니들이 '밤의 카페 테라스' 앞에 모여 앉아 하염없이 그림을 바라보고 있다.

    고흐의 그림은 총 260여 점이 넘는다. 드로잉 180점, 유화만 80여 점이다. 미술관에선 플래시를 터트리지만 않으면 사진촬영이 가능하다. 조각공원은 잔디와 나무, 물로 이뤄졌다. 조각품이 숲과 더불어 숨쉬는 것 같다. 공원 곳곳에 있는 자전거는 무료로 이용 가능하다.

     

    둘째 날_ 네덜란드 암스테르담(Amsterdam, Netherlands)

    '반 고흐 미술관'(Van Gogh Museum)과 '암스테르담 국립 박물관'(Rijks Museum)을 가기 위해 아침부터 서둘렀다. 호텔에서 스키폴 공항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탔다. 노보텔·이비스·이탑·도린트 등 암스테르담 시내의 호텔들은 대부분 30분~1시간 간격으로 스키폴 공항까지 오가는 셔틀버스를 무료로 운행한다. 공항 앞에선 '박물관 광장(Museum Plein)'으로 가는 74번 버스를 탄다. 5번, 7번 '트램'(열차)을 타도 된다. 이 때, 중앙역이나 스키폴 공항 '정보센터'에서 판매하는 '스트리펜카르트 티켓(Strippenkaart)'을 사면 편하다. 6.9유로를 내면 최대 7번까지 버스·트램을 이용할 수 있다.

    광장에 내리면 탁 트인 잔디밭 옆으로 '반 고흐 미술관'(입장료 10유로)이 보인다. '오디오 투어'(4유로)를 택하면 영어·독일어·프랑스어 등으로 해설도 들을 수 있다.

    전시관 안엔 '해바라기' '자화상' '감자 먹는 사람들' '까마귀가 날아오르는 밀밭' '고흐의 침실' '꽃이 핀 아몬드 나무' 같은 유명작품은 물론, '여인의 두상' 시리즈나 '구두 한 켤레' 같은 작품까지 빼곡했다. 캄캄한 방 안에서도 눈동자를 빛내는 여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니 "유화를 그리게 되면서 비로소 어두운 부분들에도 무수한 밝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던 빈센트의 편지가 절로 떠올랐다.

    압권은 조카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그렸다는 '꽃이 핀 아몬드 나무'. 수십 개의 꽃망울이 터지는 모습을 터키석 빛깔의 배경 위에 선연하게 그렸다. 꽃잎 하나 하나마다 조카가 태어난 기쁨을 담으려고 했던 빈센트의 정성이 느껴진다. 스스로 방아쇠를 당겼던 고흐였다지만, 그는 적어도 살아있는 동안 만큼은 처절할 정도로 생명을 축복하고 또 동경했던 화가였다.

    길 건너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입장료 10유로)에선 반 고흐 외에도 네덜란드를 빛냈던 화가들의 그림을 볼 수 있다. 렘브란트의 '야경꾼'을 비롯, 베르메르의 '델프트 풍경'이나 '우유 따르는 하녀' 같은 작품들은 보는 이의 가슴을 절로 설레게 만든다.

     

    셋째 날_ 프랑스 파리(Paris, France)

    파리로 건너갈 시간. 중앙역에서 파리로 가는 표(52.5유로)를 끊었다. 약 5시간을 달려 파리 북역(Paris Nord)에 도착했다.

    파리에선 오르셰 미술관은 입장료가 무료인 대신 줄이 길다. 추위 속에서 약 1시간 반을 떨다 겨우 입장했다. '자화상' '별이 빛나는 밤에' 같은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다.

    빈센트는 시인 휘트먼의 시를 읽고 '별이 빛나는 밤에'를 그렸다 한다. '그때 라일락이 뜰에 피었을 때/그리고 밤에 큰 별이 서쪽 하늘에 떨어졌을 때/나는 서러웠다'는 시구에서도 느껴지듯, 그림 속 별은 하늘에 떠오르는 것인지 물 속으로 가라앉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슬픔으로 소용돌이 친다. 보는 사람은 기쁜 동시에 먹먹하고 슬픈 동시에 황홀하다. 그림 앞에 선 사람들은 잠시 그렇게 넋을 잃는다.

     

    넷째 날_ 프랑스 오베르 쉬르 와즈(Auvers Sur Oise, France)

    파리 북쪽에 붙어 있는 소도시. '파리 북역'에서 열차표를 끊고 '오베르 쉬르 와즈'로 가기까진 약 1시간 정도 걸린다. 기차는 자주 오지 않는다. 1~2시간에 한번쯤. 운 나쁘면 인근 역에서 택시를 타거나 걸어갈 수도 있으니 시간표를 확인하고 표를 끊는 게 좋다. 고흐가 그렸던 '오베르 성당'과 '시청' '가셰 박사의 초상'의 주인공인 박사의 집까지 고스란히 남아있다. 빈센트가 마지막까지 묵었던 '라부 여관(Ravoux)'은 '반 고흐의 집(Maison de Van Gogh)'이라는 이름으로 볼 수 있는데, 오는 3월 까지는 공사를 위해 문을 닫는다.

    작은 표지판을 따라 빈센트와 테오가 묻힌 공동묘지로 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곳, 빈센트와 테오는 그 한 구석에 누워있다. 송악 덩굴이 두 사람의 묘를 덮고 있어, 비석이 없다면 두 사람의 무덤을 분간할 수가 없다. 마지막까지 가장 좋은 친구이자 동료였던 두 사람. 그들이 남긴 그림은 여전히 죽음보다 강렬한 매혹으로 여행자들의 발길을 이곳으로 이끈다. 돌아서는 길, 오베르의 하늘엔 주홍빛 노을이 걸렸다.

  • 조선일보,200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