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향기/미술경매

미술품 구입요령

마티스 Misul 2007. 10. 31. 15:08

초보자들이 꼭 알아야 할 미술품 구입 요령


지난달 초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마니프 아트페어에 작품을 낸 정경연 작가가 관람객들에게 작품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마니프
《미술품을 사는 데 가장 중요한 원칙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다.

돈만 있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 긴 안목을 갖고 작품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먼저 필요하다.

많은 전시를 시간 나는 대로 둘러보고 경매 현장이나 화랑을 자주 들러 시장정보를 익히는 것이 좋다.

또 관심 있는 작가나 화풍, 유파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그랬을 때, 단순한 취미를 넘어 컬렉션과 투자가 가능하다.

초보자들에게 권하는 작품 구입 요령을 소개한다. 》

 

1. 판화나 사진부터 시작하라

판화나 사진은 복제가 가능한 멀티플 아트(multiple art)라는 인식 때문에 회화에 비해 가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사진장르가 급성장하면서 이 같은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필름, 혹은 판화의 원본만 가지고 있으면 무한정 찍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작품으로 제작된 사진이나 판화는 한정된 에디션(edition)이 있다. 일정 매수만큼만 찍어낸 후에는 원본을 폐기하는 등 에디션 관리가 엄격하다. 단 사진이나 판화를 구입할 경우 믿을만한 화랑이나 경매업체를 통해야 한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도 에디션이 많은 것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다. 한 장만 제작하는 판화나 사진작품도 많다. 국내 대표 작가로는 작고한 판화작가 오윤. 그의 작품은 단 하나뿐(unique piece)으로 최근 거래가격(1000만원)도 저평가된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2. 유명작가 소품에 관심을 갖자

미술품을 처음 접하는 경우 유화에 관심을 갖고 덤비지만, 가격이 비싸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유명 작가의 드로잉에 관심을 가져보자. 외국에서는 작품성 있는 드로잉은 컬렉터들이 탐내는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2004년 현재 ㈜서울옥션에서 거래되는 박수근 유화작품은 호당 2억 원을 호가하지만 드로잉은 호당 1000만∼20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작가의 개성이 살아 있는 드로잉이 질 낮은 유화작품보다 오히려 소장가치가 높음을 명심하자.

 

3. 중저가 미술품 시장을 이용하라

우리나라도 대중을 위한 중저가 미술품 시장이 활발해지고 있다. 미술품은 비싸다는 인식을 깨는 여러 행사를 찾아 작품을 사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된다. ㈜서울옥션에서 매년 두 차례 열고 있는 ‘이지아트(Easy Art)’와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매년 6월경 열리는 ‘아트서울(Art Seoul)’이 대표적인 행사다. ‘이지아트’는 100만원 이하 작품만을 출품하고 ‘아트서울’도 미술대학에서 추천받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저렴한 가격대로 내놓는다. 매년 3월경 예술의 전당에서 박영덕 화랑과 미술월간지 ‘미술시대’가 주최하는 ‘한국 현대 미술제(KCAF)’도 중견 신진작가들의 작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장터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화랑들이 주축이 되어 매년 6월경 여는 ‘청담미술제’도 눈여겨볼 만하다.

마침 미술계 큰 잔치인 ‘2004 화랑미술제’가 6∼11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한국화랑협회(회장 김태수)가 주최하는 이번 행사에는 국내외 중량급 172명의 작가가 회화, 조각, 영상, 설치, 판화, 사진 등 현대미술 전 분야에 1800여점을 내놓아 미술품 애호가라면 꼭 한번 들러볼 만하다.

 

4. 싼 게 비지떡이다

단순히 ‘싼 맛’에 작품을 사는 것보다 작가의 대표작이면서 작품성 좋은 작품을 사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싸게 사는 방법이다. 작품 제작시기, 완성도, 희소성 등을 면밀히 살피고 믿을 만한 화랑이나 경매회사를 통해 사는 것이 장기적으로 안전하다.

미술품 구입에 주의해야 할 점은 작품의 진위 여부이다. 최소한 몇 백 만원을 넘는 경우는 필수적으로 미술품 감정서를 요구해야 하며, 팔 때도 마찬가지로 이 감정서를 첨부해야만 공신력을 갖게 된다.

또 작품 구입시에는 가능한 한 작가와 작품의 자료를 많이 받아두는 것이 좋다. 제작 연대나 제목은 물론 재료 등과 함께 팸플릿, 화집 등 가능하면 작가의 모든 파일을 알고 있는 것이 작품의 이해와 관리에도 도움이 된다.

 

5. 젊은 작가에 관심을 가져라

미술작품을 보는 안목만 있다면 이른바 미래의 박수근 이중섭이 될 작가의 작품을 미리 구입해 놓을 수 있다. 지금은 비록 작품가격이 싸더라도 언젠가는 전설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할 작가들이 분명히 숨어 있다.

물론 젊은 작가의 가능성을 한눈에 알아보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열정을 갖고 부지런히 발품을 판다면 언젠가는 작품을 보는 안목이 생길 것이고 본인이 ‘찍은’ 젊은 작가가 커 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 또한 특별한 즐거움이다.

지난달 1∼13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마니프 아트페어에서는 30, 40대 젊은 작가들이 정찰제를 표방하고 작품을 내놓기도 했다.

 

6. 가격대를 미리 알자

한국의 미술시장은 화랑 가격이나 경매가, 작가가 부르는 가격이 다른 데다 작품성을 무시한 채 ‘호당 얼마’라는 식으로 값을 매기는 관행이 계속되는 등 고질적 병폐가 적지 않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화랑가와 경매시장을 돌아다니며 적정한 가격대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작품 가격을 공개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으로 경매 카탈로그를 참고한다든가(출품작가만 해당) 화랑 미술제나 마니프 전시 같은 판매전에 자주 들러 평소 가격을 물어 보는 정도의 사전 확인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그림 값은 작가와 작품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 대략 큰 엽서 한 장 크기의 호수(1호 22.7×15.8cm)를 산정기준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제작연도, 작품성별로 천차만별이어서 일률적으로 ‘이 작가의 그림 값은 얼마’라고 말할 수는 없다.

미술 경제지 ‘아트프라이스’가 지난해 10월 창간호에서 서양화가 73명의 작품 가격을 공개한 적이 있었는데 작가별로 호당 가격과 함께 작가가 부르는 가격, 시장에서 거래되는 실거래가 변동상황을 공개했다. 조사결과 외환위기 이후 작품 가격이 소폭이라도 상승한 작가는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장욱진 천경자 다섯 명 뿐이었다.


①안진의작 '마음결 A Cast of Mind' 100×90cm, 장지, 석채, 수성안료, 500만원.
②박현웅작 '골목대장', 백동나무 위에 채색, 45만원.
③고혜숙작 '사유공간' 30×30cm, 캔버스에 아크릴, 250만원.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

 

입력 | 2004-11-04 16:18


[커버스토리]생활속에 들어온 미술품


《가을날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 화랑가에 가봤습니다.거리 곳곳에 붙은 전시 플래카드들이 곱게 물든 단풍 색상과 닮았더군요.좋은 것 많이 보고 좋은 감정 많이 느끼고 싶어집니다.그 어느 때보다 미술 행사가 풍성한 때입니다.

지난달에는 마니프 서울 국제 아트페어, 한국미술품경매와 서울옥션의 미술품 경매가 열렸습니다. 화랑들에는 볼만한 전시가 꽤 들어 있었고요. 6일부터 11일까지는 국내 대부분의 화랑들이 소장품을 판매하는 화랑미술제도 열립니다.

큰 화랑보다 작은 화랑일수록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게 쑥스러웠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스스로 전시 오브제가 된 것처럼 큐레이터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까 거북하기도 했지요.

처음이 제일 어렵다고 했나요. 일단 가슴을 펴고 화랑에 들어서니 그림들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추억, 사랑, 희망이 그림 속에서 뭉게뭉게 피어났습니다.




표갤러리가 아트컨설팅한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고급 빌라 가정. 식탁 옆에 곽훈의 20호 크기 작품 ‘다완 시리즈’를 걸어 편안한 주거 공간을 연출했다. -사진제공 표갤러리

어느 화랑에 걸려 있던 1호짜리 작은 꽃 그림은 지금도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생각보다 그리 비싸지 않았거든요. 그것을 사기로 마음먹었답니다. 얼마 후 집 거실 벽 한쪽에 수줍게 걸려 있었으면 해요.

화랑을 돌아다녀 보니 저 같은 사람이 제법 늘었다네요. 미술품을 먼발치에서 감상하던 시대는 가고, 곁에 두고 소비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지요.

아직은 돈을 들여 미술품을 사기가 겁난다면 화랑의 미술품 렌털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어떠세요. 미술품 하나 거실에 들여놓으실래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바라보는 것이 미술품이라면 좋겠습니다.》

 

○ 문턱 낮아진 미술품 경매

 

 

 

 

지난달 말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서울옥션의 제1회 무가 경매. 초보 수집가를 비롯한 미술 애호가 500여명이 모여 큰 관심을 보였다.-강병기기자

지난달 말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국내 최대의 종합 경매회사 서울옥션의 ‘제1회 무가 경매’가 열렸다.

보통 미술품 경매에 참가하려면 회비나 보증금을 내야 하지만 이 무가경매는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었다. 인사동에 구경나온 노인들, 평범한 40대 중년 여성들, 미니스커트에 어그 부츠를 신은 발랄한 여학생들, 군복차림의 군인도 눈에 띄었다.

경매 시작 5시간 전부터 전시된 물품은 유병엽의 ‘해변의 여인들’, 김점선 판화, 고 박정희 대통령 친필 사인 사진, 가수 조영남의 ‘항상 영광’, 조선시대 화조도 8폭 병풍, 중국 송청자 원형벼루 등.

추정가가 억대에 달하는 보통 경매와 달리 대부분 추정가 100만원대 미만으로, 경매 시작가도 1만원이나 10만원부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전시품을 요리조리 살펴보고, 음료를 마시며 처음 만난 다른 참가자들과 편안한 대화를 나눴다. 마치 외국 풍물벼룩시장 같았다.

사람들 대부분이 경매에 처음 참여하는 것이어서 경매사는 초반에 진땀을 뺐다. 화랑에서 25만원 정도에 팔리는 소형 판화 작품은 4만∼8만원에 싱겁게 팔렸다. 채색 해태, 자수 안경집, 목제 오리 등 전통 민속품들은 최초 경매 시작가인 1만원에 그대로 낙찰되기도 했다. 초보자들이 용감하게 번호판을 들기란 쉽지 않으리라.

이날 처음 경매에 참여한 주부 임정화씨(38·서울 서초구 서초동)는 가끔 인사동 화랑가에 들러 쇼윈도에 보이는 작품들을 구경하기만 해온 ‘소소한 미술 애호가’.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로트렉 등의 복제 포스터들을 10달러에 산적은 있지만, 아직 작가의 ‘작품’을 사 본 적은 없다.

“다음 번 경매에는 출품 작가에 대해 미리 공부한 뒤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골라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하고 싶어요. 포스터와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거든요.”

○ 미술품을 얻는 기쁨

수준 높은 경지에 오른 컬렉터들도 처음부터 작심하고 미술품을 사 모으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대개는 좋은 작품을 곁에 두고 싶은 소박한 마음에서 출발해 안목이 차츰 높아졌다.

정신과 전문의 김동화씨(34)는 레지던트 시절인 1999년 박수근의 1950년대 연필 스케치 작품 ‘초가’를 생애 처음 샀던 순간을 지금도 뭉클하게 기억한다.

드로잉 작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 그로리치 화랑 앞을 걸어가는데, 맑고 깨끗한 느낌의 연필 스케치 작품이 가로 18.2cm, 세로 12cm 크기로 걸려 있었다. 크기가 작아 가격도 저렴하겠거니 용기를 내 가격을 문의했다. 400만원이었다.

그로부터 4개월 동안 돈을 모았다. 행여 다른 사람이 사갈까봐 노심초사하며 거의 매일 화랑 앞을 지나쳤다. 그 해 가을, ‘화랑 미술제’가 열리는 예술의 전당을 찾았을 때 깜짝 놀랐다. 그 그림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화랑 주인에게 ‘그림 짝사랑’을 고백하며 부족한 돈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그림을 좋아하는 분 같다”며 100만원을 깎아줬다.

그림을 손에 넣은 이후 인사동의 액자 가게를 찾아가 소박한 나무 액자틀을 맞췄다. 단정하게 서 있는 초가 두 채 옆으로 돌담이 둘러쳐져 있는 그림과 잘 어울렸다.

“하염없이 그림을 쳐다보느라 늦은 밤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었죠.”

김씨는 이후 지금까지 이응노, 이중섭, 김환기, 박생광, 장욱진 등 국내 유명 작가들의 드로잉 작품 40여점을 사 모으게 됐다. 덤으로 가격도 올랐으니 기쁨도 더욱 크다.

“김흥수, 구본웅 화백의 작품은 미술품 경매에서 유찰된 것을 산 것입니다. 평소 화상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도록과 미술 잡지 등을 부値궐?보면 안목이 길러집니다.”

요즘에는 신진작가 작품이나 중저가 미술품 시장도 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달 100만원 미만 미술품 100여점을 판매한 서울옥션의 ‘이지아트2004’와 마니프 서울 국제아트페어에서는 젊은 작가들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 옷 살돈 아껴 작은 그림 구매

2002년 3월 서울옥션 경매 참가자 300명을 분석한 한 연구에 따르면 참가자의 절반 이상(54.6%)이 연간 소득 5000만원 미만이었다. 1억원 미만까지 합치면 89.1%나 됐다.

또 직업별로도 임원 이상 기업인과 의료인(37.7%)이 가장 많긴 했지만 일반 직장인(21.8%)이나 전문직 종사자(12.6%)도 적지 않았다. 미술품을 즐기는 계층이 과거 소수 부유층에서 점차 직장인이나 전문직 종사자 등 ‘평범한’ 사람들로 옮아가고 있는 것이다.

‘1호 그림전’, ‘작은 그림전’ 등을 기획해 온 선아트센터 김창실 대표는 “고급 부티크 옷을 살 돈으로 화랑에서 유명 작가의 작은 그림을 사는 30, 40대 여성들이 많다”면서 “그림을 사는 그들의 표정에는 행복감이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

어떤 미술품을 어떻게 실내에 배치해야 좋을지 화랑에 문의해오는 사람들도 늘었다.

가나아트센터, 박여숙 화랑, 박영덕 화랑, 표갤러리 등 많은 화랑들은 이런 고객들에 맞춰 컨설팅을 해주거나 미술품 렌털 마케팅을 적극 펼치고 있다.

박여숙 화랑의 이진숙 큐레이터는 “작품가 500만원 미만의 작품은 구입하지만, 그 이상 금액은 작품가의 3∼7%를 내고 대여하는 고객이 많다”고 말한다.

주부 신수연씨(39)는 지난해 말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의 57평형 아파트로 이사 온 뒤 서울옥션에 컨설팅을 부탁했다. 아트컨설턴트들이 여러 번 방문해 집안 인테리어와 가족 라이프스타일 등을 파악해 미술품을 추천했다.

거실 소파 뒤에는 박승순 유화 작품 ‘정원’을 걸었다. 방 사이 복도에는 메탈 느낌이 강한 김찬일 그림을, 식탁 옆에는 푸른색이 강렬한 박승순 그림을 두었다. 대여비는 모두 월 26만원.

“고급 가구를 들여놓은 것보다 만족감이 훨씬 큽니다. 갤러리 같은 집에서 살다보니 생활이 한층 업그레이드된 기분이에요.” 그는 이 렌털 미술품을 아예 사기로 최근 결정했다.

서울옥션 아트컨설팅팀 박지온씨는 “강남 아파트들에는 모던 인테리어 트렌드에 따라 하상림, 김찬일, 손진아, 홍승혜 등 색감이 화려하거나 미니멀한 작품이 많이 걸린다”고 말한다. 일부 인테리어 업체는 이들 작가의 화풍을 베낀 모조품을 유통시킨다는 말까지 들린다.

미술품이 인테리어의 도구로 활용된다는 미술계의 한숨 섞인 우려도 있지만, 미술품이 대중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소식은 궁극적으로 반갑다. 작가의 예술 혼은 가까이 마주했을 때 비로소 새롭게 발견되고 공유된다. /출처 : 내마음의 캔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