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향기/그림이야기-명화읽기

반 고흐와 고갱

마티스 Misul 2009. 5. 15. 21:04

[김영나의 서양미술 산책] - 반 고흐와 고갱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고갱의 의자'(왼쪽) 와‘빈센트의 의자’

 

생애가 작품만큼 관심을 갖게 하는 예술가들이 있다. 며칠 전 신문에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귀를 자른 것은 반 고흐 자신이 아니라 동료화가 폴 고갱(1848~ 1903)이었다는 주장이 실렸다. 남부 프랑스의 아를에서 1888년 10월부터 두달을 함께 지내던 반 고흐와 고갱이 격한 언쟁을 벌였고, 반 고흐가 면도칼로 고갱을 위협하자 고갱이 박차고 떠나버렸으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반 고흐가 자신의 귓불을 면도칼로 잘랐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반 고흐를 이렇게 격분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네덜란드에 있던 반 고흐가 화상(畵商)을 하는 동생 테오를 찾아 파리로 온 것은 1886년이었다. 같은 해 그는 이곳에서 5세 연상인 고갱을 만났다. 증권 브로커로 일하다가 35세에 화가가 된 고갱은 인상주의를 벗어나려는 젊은 화가들의 리더 격이었다. 얼마 후 반 고흐는 아를로 떠나면서 고갱을 초대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공동생활은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기질 차이도 있었지만 미술에 대한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다.

고갱은 숙련된 소묘 화가인 앵그르와 드가를 좋아했고, 반 고흐는 고갱이 싫어하는 농민 화가 밀레를 좋아했다. 고갱은 구상을 미리 하고 기억과 상상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라고 충고했지만, 반 고흐는 눈앞에 펼쳐지는 자연의 물리적 세계와의 감정적 교류에서 영감을 받는 화가였다. 이런 차이는 언쟁으로 이어졌고, 결국 귓불을 자르는 반 고흐의 첫 번째 발작을 촉발했던 것이다.

 

고갱과 같이 지낼 때 반 고흐는 자신의 의자와 고갱의 의자를 한쌍의 그림으로 그렸다. 반 고흐 자신의 의자에는 그가 늘 애용하던 서민적인 파이프가 놓여 있고, 고갱의 의자에는 지성과 상상력을 상징하는 책과 촛불이 있다. 자신의 의자는 거친 직선을 교차시켜 투박하게 묘사한 반면, 고갱의 의자는 장식적인 곡선과 풍부한 색채로 표현했다. 의자 주인의 존재가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지는 이 그림들은 단순한 정물화를 넘어 신비감마저 느끼게 한다  / 조선일보.2009.5.12

◇ 잘려 나간 귀를 붕대로 감싼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 1889년작

 

반 고흐의 귀는 친구인 고갱이 칼로 잘랐다

대표적인 후기 인상파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의 귀는 폴 고갱과 다툼 끝에 자신의 귀를 스스로 잘랐다는 기존 학설을 뒤집는 연구가 나왔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5일 보도했다.

 

반 고흐는 1888년 12월23일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스스로 귀를 자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 예술사가의 얘기는 다르다. 이들 주장에 따르면 고갱은 알스지역에 위치한 고흐의 ‘옐로 하우스’에서 논쟁을 한 뒤 짐을 챙겨 집 밖으로 나왔다. 뒤이어 고흐가 따라 나왔고, 창녀촌에 도착할 때까지 실랑이는 계속됐다. 뛰어난 펜싱 실력을 가진 고갱은 화가 나(혹은 자기방어를 위해) 들고 있던 검으로 고흐의 왼쪽 귓불을 잘라냈다. 고흐는 잘려나간 귀를 창녀에게 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그는 경찰에 전혀 다른 진술을 했다.

이는 고흐가 고갱에게 보낸 마지막 서신에서 “너는 침묵하고 있구나. 나도 그럴 것이다”라고 한 이유를 설명해주며, 가장 논리적 해석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카우프만은 “고흐의 귀 스케치에 ‘익투스(ictus)’라는 라틴어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펜싱에서 찌르기를 뜻하는 용어”라며 “귀 위 지그재그 형상도 고갱의 칼날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당시 고흐가 정신분열증을 겪기는 했지만 미친 상태는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세계일보.20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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