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향기/미술전시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행복하고 슬픈 사랑 展

마티스 Misul 2008. 4. 13. 09:38


  
   예술가들의 사랑은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또 어떤 예술적 작품을 탄생시켰을까? 현재 고양문화재단 아람미술관에서는 아마데오 모딜리아니와 잔 에뷔테른의 연인이자 예술가적 동반자로서의 삶과 작품을 보여주는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행복하고 슬픈 사랑 展>이 열리고 있다.


가느다란 긴 목에 슬프고 애잔한 듯 보이는 눈빛의 여인 초상으로 잘 알려진 화가 모딜리아니는 우리에게 친숙하고, 또한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로댕과 까미유 끌로델의 관계만큼 모딜리아니(1884∼1920)와 잔 에뷔테른(1898∼1920)의 관계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행복하고 슬픈 사랑 展>은 모딜리아니와 잔 에뷔테른의 작품들을 함께 보여주는 전시로 모딜리아니의 유화 및 드로잉 45점, 잔 에뷔테른의 유화, 과슈, 아크릴, 드로잉 65점과 두 화가의 공동 드로잉 1점, 그리고 그들과 관련된 엽서와 자료들이 전시되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번 전시의 작품과 사료들이 근년에 알려진 잔 에뷔테른의 개인 컬렉션으로 잔 에뷔테른에 관한 새로운 자료의 발굴을 통해 얻은 중요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비록 ‘일부’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잔 에뷔테른의 소묘, 수채화, 유화작품, 그리고 잔 에뷔테른과 가족들의 귀중한 미공개 사진이 다수 출품되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지는 귀중한 컬렉션이라고 하겠다.


 


  이탈리아 출신의 화가 모딜리아니는 직설적이면서도 원초적인 아프리카 조각과 가면에서 영감을 받아 당시의 관습적인 공간개념과 원근법을 무시하고 형태에 있어서도 자신만의 독특하고 절제된 조형성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1906년, 유럽 전위예술의 중심지이자 20세기 예술의 토대가 마련되고 있던 파리로 이주한 모딜리아니는 남들과는 다른 스타일로 작가적 길을 걷는다. 당시 유행하던 미술 사조나 다른 사람들의 관점과는 다르게 미술관이나 화랑, 전시회 등을 통해 그림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을 세우면서 독립적인 화가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그는 당대 브랑쿠시의 조각, 조형에 있어서 혁신을 이루었던 세잔과 피카소의 청색 시대의 작품, 그리고 이탈리아의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여인상의 영향을 흡수하고 발전시켰다. 작품 <클라라의 초상>(1915), <부인상(C.D. 부인)>(1916), <여인의 초상>(1918) 등은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모딜리아니는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를 만나 한때 그의 권고에 따라 조각에 대한 새로운 의욕을 불태웠다.

 

그러나 16세 무렵부터 앓아 왔던 결핵과 같은 질병으로 인해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고, 그런 이유로 상당한 체력을 요하는 작업을 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당시 화상이었던 폴 기욤이 회화로의 복귀를 권유하여 그는 결국 조각가로서의 길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조각에 대한 미련은 원시 조각의 단순한 형태와 조각적 양감이 반영된 그의 회화에 나타나고 있다.

 

 




   잔 에뷔테른이 모딜리아니를 처음 만난 것은 몽파르나스에 있는 아카데미 콜라로시의 학생 시절이었다. 14살이라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로서 대등하게 상호영향을 주고받았던 잔 에뷔테른는 결국 그의 연인이 되었다.

모딜리아니의 주변에는 늘 여자가 끊이지 않았고 언제나 술에 절어 있었다. 워낙 병약하게 태어난 데에다 마약에까지 손을 대서 결국 서른다섯이라는 짧은 나이로 생애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 소식을 들은 잔 에뷔테른은 당시 임신 8개월이었는데 모딜리아니가 죽은 지 이틀 뒤 친정집 아파트에서 투신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의 자살과 관련된 충동을 그린 작품으로는 문 밖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고 침대 위에는 자신을 그린 수채화인〈죽음〉과 <자살>이 있다. 자신의 죽음을 미리 그림으로 그린 그녀…. 참으로 슬프고도 비극적인 사랑이 아닌가.

로댕과 까미유 끌로델의 경우처럼 미술사의 서술이 남성 위주로 쓰인 까닭에 잔 에뷔테른의 작품에 대한 자료나 평가 역시 잘 이루어지지 않은 면이 있다. 그러나 잔 에뷔테른의 삶과 예술이 베일 속에 가려졌던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그녀의 자살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1920년, 잔 에뷔테른은 모딜리아니의 죽음 직후에 자살을 했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었던 그녀의 가족들은 그녀의 죽음에 대한 언급을 피했고, 이는 ‘잔 에뷔테른’이라는 예술가의 자취를 감추게 만들었다.

잔 에뷔테른은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로 알려졌지만, 제대로 된 한 장의 사진도 공개된 적이 없었다. 단지 모딜리아니의
작품 속에 모델로 그려진 그녀의 모습만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모딜리아니의 데생과 유화 작품 속에 나타난 잔 에뷔테른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실제 어릴 적부터 죽기 전까지의 아름다웠던 시절의 사진 또한 함께 전시되어 있다.
 

 


 

 
  잔 에뷔테른이 미술사에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베네치아에서 열린 <모딜리아니와 그의 친구들>이라는 전시에서였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아람미술관에서 모딜리아니의 미공개 소묘뿐만 아니라, 잔 에뷔테른이 직접 제작한 소묘와 20여 점에 달하는 유화와 수채화 150여 점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작품들로 인해 베일 속에 가려지고 전설 같은 이야기로만 머물러 있던 잔 에뷔테른의 여성으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작가로서의 진지한 삶에도 실체가 부여되었다.
 

작품의 앞면과 뒷면에 각각 다른 그림이 그려져 있는 작품 <기모노를 입은 여인(어머니 외독시의 초상)&과일과 꽃> 그리고 <검은 옷을 입은 브르타뉴 여인&강가>가 무척 흥미롭다.
 
 

이들 작품뿐만 아니라 당시 모딜리아니와 잔 에뷔테른, 두 사람이 주고받았던 엽서들도 시간을 할애해 꼼꼼하게 읽어 보길 권한다. 당시 그들의 상황과 한번쯤 열렬하게 편지를 주고받았던 우리들의 연애시절을 떠올려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또한 잔 에뷔테른이 그렸던 넬 도프의 소설 《기아와 비탄의 날들의 삽화를 위한 밑그림》(1915) 삽화용 그림과 그녀가 남긴 머리카락 등도 우리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1919년에 그린 모딜리아니의 자화상_ 브라질 상파울로미술관 소장

Self-portrait, 1919, oil on canvas, São Paulo Museum of Art, Sao Paulo, Brazil

 

  



Jeanne Hébuterne in Red Shawl_ 붉은 숄을 두른 잔 에뷔테른

잔 에뷔테른의 초상의 대표작으로 치는 이 작품도 이번 한국전시회에 오지 않았다.

 

출처 : Tong - justinKIM님의 | 책과 사람들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