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향기/미술이론

미술은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큐레이터 전시의 변]

마티스 Misul 2008. 7. 19. 10:02

[큐레이터 전시의 변] 오늘의 한국미술, 미술의 표정전

 

 

미술은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몇 년 사이 일부 미술작품의 가격은 강남 부동산 가격이 폭등할 때와 비견할 정도로 두 세배나 뛰었다. 어느 인기 작가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 한 점도 없다고 한다. 이는 이제 미술이 문화에 대한 욕구를 충전함은 물론 재테크의 대상으로도 우리 생활 속에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전가영의 ‘의자들의 합창 vol.3’


이러한 이유에서일까. 이제 미술에 대한 관심은 단순한 개인 취향을 넘어 객관적으로도 미술을 평가해 보고자 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렇다면, 미술작품을 어떻게 보는 것이 바람직할까? 여기에 용인할 만한 두 가지 관점이 있다. 하나는 일종의 기호로서 작품을 보는 것이다. 작품이 어떤 대상을 지시한다는 입장이다. 미술작품이 자연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모방하거나 재현을 한다고 해도 이를 100% 만족시킬 수가 없기 때문에, 이를 우리의 경험이나 지식으로 보완하거나 추측해야 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기호와 같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작품을 볼 때 감정을 이입해서 보아야 한다는 관점이다. 감정이 없는 수양버들이 슬퍼 보이는 것은 우리의 슬픈 마음이 그 수양버들에 이입되었기 때문에 슬퍼 보인다는 식이다.

그러나 미술을 기호로서 보거나 감정을 이입해서 보는 것은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어떤 것을 지시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느낌을 주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현실에 없는 대상을 표현한 초현실적인 작품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감정에 의존해서 보게 되면 작품을 왜곡해서 볼 소지도 있다. 일례로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작품을 비관적으로 볼 소지가 크다.

미술작품은 작가의 ‘발명품’이다. 작가가 자신의 의도를 여러 가지 매체의 성질을 파악해서 눈으로 볼 수 있게 표현한 발명된 세계인 것이다. 따라서 작가는 무엇보다도 보이는 것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우리가 작품을 통해 어떤 것을 연상하는 것도 그러한 성질이 작품에 표현되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사람들은 “잘 그렸다”라는 말을 한다. 어떤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잘 재현해 내면 늘 입버릇처럼 쓰는 말이다. 그렇다고 잘 그렸다는 것이 모방이나 재현을 잘한 것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작가의 의도가 잘 표현된 작품이라면 얼핏 봐서 잘못 그린 그림일지라도 진정 ‘잘 그린 그림’인 것이다.

예술의전당에서는 지금 개관 20주년 특별기획전시인 ‘오늘의 한국미술-미술의 표정전’이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얼굴에 표정이 있듯이 미술에서의 표정을 짓게 한 표현의 원리를 살핀다. 즐거움과 슬픔, 여유로움과 긴장감 등 우리 눈을 통해 느끼는 다양한 미술의 표정을 ‘형태’, ‘빛과 색채’, ‘움직임’, ‘공간’ 총 네 가지 테마로 정리하여 미술의 원리를 조명하고 있다. 한국의 정예작가 46명이 회화, 사진, 조각, 설치, 영상, 판화 등 여러 장르 작품 200여 점을 출품했다.

이 전시는 다음의 두 가지에서 주목할 만하다.
하나는 지식이나 관습에서 벗어나서 ‘보는 것’에 충실하면 미술이 더 잘 보인다는 메시지다. 우리가 친구의 표정을 읽을 때 굳이 다른 정보를 통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보고 그 친구의 마음을 이해하듯이 미술작품도 같은 맥락에서 볼 것을 권한다. 작품도 작가의 의도에 의해 표현된 산물이라는 주장에서다.

다른 하나는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과 경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할아버지뻘 되는 변시지 작가부터 손녀뻘 되는 전가영 작가까지 여러 세대의 작가들이 함께하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미술작품을 보기 전에 여러 가지 지식을 습득하면 미술이 더 잘 보인다는 뜻으로 사용한다. 이 말 대로라면 작품 보기에 열중하기보다는 작가 정보와 작품에 얽힌 이야기들, 작가 노트만을 탐독하면 작품에 대한 이해와 해석은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이 진정 작품을 정확하게 이해했다고 볼 수 있을까? 실제로 작품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칫 그릇된 정보는 감상자의 눈을 더 멀게 하여 작품에서 더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 작품은 얼굴의 표정처럼 스스로 해석해 준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미술은 태초부터 보는 것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서민석 예술의전당 큐레이터/http://www.fnnews.com 경제신문 파이낸셜 2008.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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